‘K2 소총’ 설계자의 숨겨진 비화: 국산 소총 개발의 눈물과 땀

총기 독립의 염원, 국산 소총 개발의 시작

K2 소총은 대한민국 국군에게 단순한 보급품을 넘어 **’자주 국방’**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 소총이 탄생하기 전, 한국군은 미군의 M1 개런드, M16 소총 등 외국산 총기에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베트남전 이후 미국은 동맹국에 대한 무기 지원 및 생산 통제를 강화했고, 이는 한국이 독자적인 방위산업을 구축해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특히 전시에 총기 보급이 끊길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비밀리에 추진된 **’번개사업’**을 통해 M16 소총의 면허 생산(콜트사)을 시작했으나, 이는 최종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이 기술을 발판 삼아 한국 지형과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완벽한 국산 소총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 중대한 임무를 맡은 중심에는 소수의 열정적인 개발팀과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국산 소총 개발의 아버지: 이영복 박사의 헌신

K2 소총 개발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이영복 박사입니다. 그는 1970년대부터 국산 소총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었으며, K2 소총의 기본 설계와 기술적 완성도를 책임졌습니다. 당시 한국은 총기 설계에 필요한 핵심 기술과 데이터가 전무했기 때문에, 개발 과정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개발 과정의 난관과 극복

  1. 기술 데이터의 부재: 총기의 성능을 결정하는 탄도학 데이터, 총열 수명 테스트, 인체공학적 설계 등 모든 데이터를 개발팀이 직접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특히 총열 내부의 강선(rifling) 규격을 결정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2. 미국의 견제: 미국은 한국의 독자적인 소총 개발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군수 기술 유출을 우려하여 핵심 부품 생산 기술 이전을 거부하거나, 라이선스 생산 계약을 무기로 개발에 간접적인 압력을 가했습니다.
  3. 예산과 환경의 어려움: 개발팀은 넉넉하지 않은 예산과 열악한 연구 환경 속에서 밤낮없이 총기에 매달렸습니다. 이영복 박사는 ‘책상에 앉아 설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시험장에서 총기를 들고 수많은 사격 테스트와 혹독한 환경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고난 끝에 1980년대 초, M16의 구조적 장점과 AK 소총의 신뢰성을 결합한 독자 모델인 **’XB 시리즈’**를 거쳐 마침내 K2 소총의 최종 모델이 완성되었습니다.

K2 소총의 독창성과 우수성

K2 소총은 단순히 M16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한국 지형과 한국군 특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설계가 적용되었습니다. 이는 K2가 가진 가장 큰 기술적 의의입니다.

특징설계의 이유 및 장점
개머리판 접철식한국군의 주력 수송 수단인 트럭 탑승 공간 절약 및 공수부대 운용의 용이성 확보 (M16은 고정식)
가스 조절기계절 변화나 이물질 유입 시 가스압을 조절하여 격발 불량을 최소화하는 높은 작동 신뢰성 확보
탄창 호환성NATO 표준인 M16 탄창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전시 연합 작전 시 보급의 유연성 확보
조작 편의성M16과 유사한 조작 방식으로, 이미 M16을 사용하던 병사들의 재교육 부담 최소화

특히 K2는 동부 전선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 겨울철 낮은 기온에서도 높은 신뢰성을 자랑했습니다. 이는 곧 **’한국 지형 최적화’**라는 개발 목표가 성공적으로 달성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K2의 보급과 국방 산업의 발전

1980년대 중반부터 K2 소총이 한국군에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한국은 주력 소총을 자국 기술로 생산하고 유지 보수할 수 있는 자주적인 국방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무기 생산을 넘어, 한국의 방위산업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K2의 성공적인 개발과 보급은 한국의 소총 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했으며, 이후 K1A 기관단총, K3 기관총 등 다양한 국산 총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또한, K2 소총은 필리핀, 나이지리아, 페루 등 해외 여러 나라에 수출되면서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수출 효자 상품’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설계자의 유산: 땀과 눈물의 결실

K2 소총은 수십 년간 한국군의 주력 소총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후방 부대와 예비군 훈련 등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영복 박사를 비롯한 초기 개발팀의 헌신과 희생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역사입니다.

  • 자주 국방의 상징: K2는 한국의 기술력과 의지가 만들어낸 국산 무기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군사적 자부심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 개발 정신의 계승: K2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적 노하우와 **’없으면 만든다’**는 도전 정신은 이후 K-방산의 성장 동력이 되었습니다.

K2 소총은 대한민국 군 복무자들의 청춘과 함께했던 동반자이며, 그 총성이 울릴 때마다 국산 무기 개발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땀과 눈물이 함께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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