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비화] 전두환 대통령 시절 ‘5분 대기조’와 군사 훈련의 강화 배경

5공화국 군사 정책의 핵심: “강군 육성”과 “유사시 즉각 대응”

전두환 대통령(제5공화국)의 집권 시기였던 1980년대는 한국군의 훈련 강도와 준비 태세가 극단적으로 강화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군사 정책의 핵심은 ‘유사시 즉각 전투 수행 태세’ 확립에 있었으며,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5분 대기조’**의 상시 운용 및 훈련의 실전화였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북한의 위협 대비라는 안보적 목표와 함께, 군 출신 지도자의 통치 이념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5분 대기조’의 강화 배경과 목적

‘5분 대기조’는 원래 전면전이나 국지적 도발 등 긴급 상황 발생 시 5분 이내에 무장하고 출동할 수 있도록 지정된 소규모 병력입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가 이 제도를 상시화하고 훈련을 강화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 등 북한의 대남 도발이 지속되면서, 정부는 **’도발 원점 초토화’**를 포함한 강경한 대응 태세를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5분 대기조는 최전방은 물론 후방 지역까지도 국지적 도발이나 침투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현장 전력으로 기능했습니다.

군 출신 지도자의 통치 스타일

전두환 대통령은 군 내부의 하나회를 기반으로 권력을 장악했던 군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통치 스타일은 군대식의 일사불란함, 효율성, 그리고 엄격한 기율을 강조했습니다. 군의 전투 태세 강화는 그의 통치 철학을 반영하는 핵심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모든 부대가 24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함으로써 군의 기강을 확립하고 최고 통수권자의 권위를 군 내부에 각인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군사 훈련의 ‘실전화’와 강도 극대화

1980년대는 훈련의 명칭과 형태가 **’실전적’**으로 바뀌었으며, 훈련의 강도 역시 이전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대화되었습니다.

‘정신 전력’과 ‘체력 단련’의 강조

  • 극기 훈련: 특전사 등 특수부대에서나 하던 혹독한 유격 훈련과 천리 행군 등이 일반 보병 부대에까지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추운 겨울철에는 장병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훈련이 일상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 과학화 훈련 도입의 전 단계: 훈련의 과학화가 정착되기 이전이었기에, 훈련의 실효성을 높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훈련 시간을 늘리고 강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국지전 대비 훈련의 일상화

5분 대기조의 운용과 함께 비상 상황에 대비한 훈련이 예고 없이 일상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 불시 상황 전파: 새벽 시간이나 취침 시간에 “전투 배치!” 또는 “진돗개 발령!” 등의 비상 명령이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이는 장병들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잠에서 깨어나 즉시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습관화시키는 훈련이었습니다.
  • ‘완전 무장’ 태세 유지: 평상시에도 근무지와 생활관의 병사들은 5분 대기조의 출동 준비 태세를 유지해야 했으며, 이는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했지만, 동시에 유사시 대비 태세를 극도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군 내부의 숨겨진 비화와 파급 효과

전두환 정권 시절의 훈련 강화는 단순히 안보적 측면뿐만 아니라, 군 내부의 권력 구조와 병영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회 기반의 인사 시스템

하나회 출신 장성들이 군의 요직을 장악하면서, **’강한 훈련 성과’**는 진급의 중요한 지표가 되었습니다. 지휘관들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더욱 가혹하게 훈련을 실시했고, 이는 일선 병사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상명하복과 경직된 병영 문화

군 출신 최고 지도자의 영향력 아래, 군 내부의 상명하복 문화는 더욱 경직되었습니다. 훈련의 강제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병사 인권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5분 대기조의 불시 출동은 장병들에게 스트레스와 피로를 가중시켰지만, 이는 ‘군인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당시의 강경한 분위기 속에서 당연시되었습니다.

5분 대기조 강화가 남긴 유산

1980년대에 정착된 ‘5분 대기조’와 고강도 훈련 시스템은 이후 90년대와 2000년대 한국군 훈련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 긍정적 유산: 유사시 초동 조치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으며, 북한의 비정규전 침투에 대한 대비 태세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시대적 전환: 1990년대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군의 정치 중립이 강화되면서, 훈련의 강도는 유지되되 과학화와 인권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점차 전환되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5분 대기조 강화는 냉전 시대의 첨예한 안보 상황과 군사 정권의 통치 방식이 결합되어 빚어낸, 대한민국 군사사의 특수한 비화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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