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균열: 중소 관계 악화의 배경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경쟁을 벌이던 냉전의 정점이었지만, 공산권 내부에서도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소련과 중국 사이의 이념적, 지정학적 갈등인 ‘중소 분쟁’입니다. 마오쩌둥의 중국은 흐루쇼프의 ‘평화 공존론’을 수정주의라 비판했고, 소련은 중국의 급진적인 정책을 비난하며 이념적 충돌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이념적 갈등은 물리적인 충돌로 비화될 위협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4,000km에 달하는 긴 국경선이 있었습니다. 특히 1960년대 후반, 소련과 중국은 국경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서 진전을 보지 못했고, 양국은 국경 지대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며 군사적 긴장을 극도로 높였습니다. 다만스키 섬(중국명 전바오 섬) 전투는 이 숨겨진 긴장이 폭발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다만스키 섬 전투: 냉전의 새로운 화약고
1969년 3월, 우수리강(우스리강)에 위치한 작은 무인도인 다만스키 섬을 둘러싸고 중국 인민해방군과 소련 국경수비대 사이에 일련의 무력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이 섬은 강물의 흐름에 따라 위치가 바뀌는 충적토 섬이었는데, 소련은 섬 전체를 자신들의 영토로 간주했고, 중국은 섬이 중국 쪽 강변에 더 가깝다는 지리학적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했습니다.
중국의 기습 공격과 초기 충돌
1969년 3월 2일, 중국군 소규모 부대가 다만스키 섬에 침투하여 매복하고 있다가 소련 국경수비대를 기습 공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습은 중국이 수년 간 준비한 도발이었으며, 소련의 방심을 노린 전술이었습니다. 초기 교전에서 소련 국경수비대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즉시 증원군을 투입하여 중국군을 섬에서 격퇴하려 했습니다.
소련의 강력한 반격과 전술적 승리
중국군이 다시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섬을 점령하려 하자, 소련은 전면전으로의 확산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력한 군사력을 사용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당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BM-21 그라드(Grad) 다연장 로켓 시스템(MLRS)**을 실전에서 처음으로 대규모로 사용하여 중국군에게 엄청난 화력의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 그라드 MLRS의 파괴력: 짧은 시간 안에 넓은 지역에 엄청난 양의 로켓을 퍼부을 수 있는 그라드 시스템은 중국군의 지상 병력과 보급선을 초토화시켰습니다.
- 탱크와 장갑차 투입: 소련은 T-62 전차 등을 투입하여 화력과 기동성에서 중국군을 압도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소련이 섬의 통제권을 재확보하며 전술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중국은 자국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다만스키 전투가 양국에 미친 전략적 영향
다만스키 섬 전투는 단순한 국경 분쟁을 넘어, 냉전의 전략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습니다. 미·소 양극 체제가 아닌, 소련-중국-미국의 삼각 구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대미 관계 전환
소련의 강력한 군사력과 핵 위협에 직면한 중국은 ‘주된 적’이 소련임을 명확히 인식했습니다. 이는 중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이어진 이른바 **’핑퐁 외교’**는 다만스키 전투의 전략적 후폭풍이었습니다. 중국은 소련의 동쪽 국경을 약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소련의 전략적 딜레마
소련은 서쪽 유럽 전선과 동쪽 중국 국경선 모두에 막대한 병력을 배치해야 하는 심각한 전략적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소련은 중국 국경에 수십만 명의 병력을 장기간 주둔시켜야 했고, 이는 서방과의 군비 경쟁에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소련의 군사 계획가들은 이제 핵전쟁뿐만 아니라, 재래식 전력으로 중국과의 대규모 국경 전쟁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냉전기 핵 위기와 전면전의 공포
다만스키 섬 전투는 전면전 직전의 심각한 상황까지 치달았습니다. 소련 지도부는 중국에 대한 핵 공격을 진지하게 고려했으며, 이는 미국 정부에도 포착되어 국제적인 핵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 핵 보복 위협: 소련은 중국의 대규모 재래식 병력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전술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습니다.
- 미국의 개입: 미국은 중소 간의 핵전쟁이 발생할 경우 세계적인 핵 확산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여, 소련에게 핵 사용에 대한 신중을 기하도록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결국 양국 모두 핵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국경 분쟁은 국지전 수준에서 멈췄지만, 이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보다 더 예측 불가능하고 뜨거웠던 또 하나의 위기였습니다.
다만스키 섬 전투의 현대적 재조명
다만스키 섬 전투는 현대 전쟁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 군사적/전략적 교훈 | 상세 내용 |
| 화력의 집중 | 소련의 그라드 MLRS 사용은 보병 중심의 구식 전술을 가진 대규모 군대(중국군)에게 현대적인 대량 화력 투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주었습니다. |
| 국경 분쟁의 핵 위협 | 냉전 종식 이후에도 국경 분쟁이 대규모 군사 충돌로 비화될 수 있으며, 초강대국 사이에서는 핵무기 사용 검토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
| 전략적 삼각 구도 | 이 사건은 미국이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을 포위하는 전략적 삼각 구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냉전 종식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
다만스키 섬 전투는 단순히 국지전으로 끝나지 않고, 1960년대 말 세계 질서의 재편과 냉전의 종식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숨겨진 역사의 분수령이었습니다.

현대 군사 전략과 과거 전쟁사를 동시에 분석하는 밀리터리 전문 기자입니다. 무기체계의 실제 전력과 전략적 의미를 깊이 있게 전해드립니다.